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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혀가 내둘러지는 21세기 유령 도시

강제 집행은 도대체 왜…

[취재파일] 혀가 내둘러지는 21세기 유령 도시
8뉴스 뿐 아니라, 아침 뉴스 출연까지…하고 싶은 얘기를 거의 다 했지만 시원하기는커녕 가슴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언제 해결될지, 해결책이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도 법원의 강제 집행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인천 가정오거리 도시개발사업 구역 이야기입니다.

LU1, 루원시티 사업이라고도 합니다. 인천의 구도심을 최첨단 입체복합도시로 만들겠다며 지난 2006년 개발 계획이 수립됐습니다. 인천시와 LH가 공동으로 사업에 착수했고, 77층 랜드마크 타워를 포함해 멋들어진 새 도심을 만들겠다고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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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어언 6년이 지난 2012년의 오늘, 97만 제곱미터나 되는 사업 구역은 낮에는 폐허, 밤에는 유령 도시로 변해 있었습니다. 옛 평수로는 29만 평,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거대한 면적이 말입니다. 차라리 철거라도 이뤄졌다면 단순히 빈 공터로 남았을 공간이 주민 이주 뒤에도 그대로 방치돼 낮에도 을씨년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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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을씨년스러움은 솔직히 무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불 꺼진 거리 여기저기서서 튀어나오는 고양이들. 출입문과 유리창이 모두 뜯긴 한 빌라에서는 고양이의 소행으로 보이는 끔찍한 광경도 목겼됐습니다. 잡아뜯긴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하얀 깃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오리의 머리. 꿈에 볼까 두려운 광경이 곳곳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됐습니다. 일부러 심한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는 현장이었습니다.

기존에는 1만5천 세대나 살고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50세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썩은 물과 쓰레기가 가득한 지하층 위에서, 성한 유리창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빌라에서 말입니다. 여름이 찾아왔는데 모기와 전염병은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남은 50세대 때문에 사업이 진행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업은 첫 단추부터 아예 잘못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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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구역 바로 옆으로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는데, 이 고속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꾸는 것을 전제로 개발 계획을 세운 겁니다. 하지만 당연히 있었어야 할, 국토부와의 사전 협의가 없었습니다. 지자체 마음대로 경인고속도로를 이웃한 청라지구까지 직선으로 연결한 뒤, 인천항으로 굽어나가는 가정오거리부터는 일반도로로 바꾸겠다고 계획을 잡은 겁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인천항 물동량은 직선화 될 것으로 믿고 있던 고속도로와 따로 연결해 소화시킨다는 원대한 꿈(?)이었습니다.  

지금의 유령 도시가 말해주듯 인천시와 LH의 꿈은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국토부는 당장 직선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인천항의 물동량을 고려해 끝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사업은 토지 보상과 주민 이주 단계에서 중단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연히 될 거라고 생각해 덜컥 보상과 이주부터 실시했고, 그 뒤 철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거대한 유령도시가 벌써 4년째 방치되고 있는 겁니다.

일반적인 재개발 사업이 끝까지 버티며 못 나가겠다는 세대 때문에 철거를 못해 사업이 지연되는데 반해, 인천 가정오거리 재개발 사업은 오히려 사업 자체가 기약 없이 늘어지자,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나가기를 꺼려하고 있는 조금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벌써 4년이나 방치됐는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멀쩡한 내 집 대신 임대주택을 전전하며 지내야 하냐는 얘기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법에 따른 강제 집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도시개발사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재개발과 달리 전면 수용과 보상 절차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이미 전체 부지는 법적으로 LH의 소유가 된 겁니다. 버티고 있는 세대들에 대한 보상금도 이미 법원에 공탁돼 있는 상황입니다. LH는 만5천세대 대부분이 보상 직후 스스로 이주한만큼, 보상 금액에 있어 부족함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LH는 토지 보상에만 1조 6천억 원을 썼고,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매년 7백억 원이 넘는 돈을 이자로 부담하고 있습니다.

3년 전, 감사원이 지지부진한 사업 전반에 대해 감사를 벌여 무턱대고 보상부터 실시한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사업을 진행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고속도로의 지하화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재정이 바닥난 인천시가 선뜻 나서지 못한 겁니다. 고속도로 문제가 쟁점이 된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고속도로 대신 일반도로로 바꿀 경우 이웃한 지역과 접근성이 좋아지는 데다, 차로 폭 축소와 고속도로 주변 녹지 공간 활용을 통해 사업 부지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전체 토지 이용계획이 어그러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LH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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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공동 시행자인 LH는 현재 수요 조사 등 계획 수립 이전에 행하는 기초 조사를 다시 벌이고 있습니다. 아예 계획을 새로 짜겠다는 얘긴데요, 타당성 조사 등 현재 상황에서 이 사업을 계속 이끌어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연구 용역도 준비중입니다. 벌써 6년을 허비하고, 매년 수백억 원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등 흘러간 세월만큼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연구 용역이나 수요 조사 결과에 따라 사업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미 떠난 이주민들도 매일 밤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찾아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완공돼 재정착을 해야 하는데, 살던 집 조차 허물지 않고 있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업 구역 안에서 내 집을 갖고 살던 사람들, 가게를 운영하며 돈 벌이를 했던 주민들은 사업 지연으로 인해 재정착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그 기간 만큼 입게 될 손해는 누가 보상해 줄 거냐며 묻고 있습니다. 인천시와 LH는 법에 따라 추가 보상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얘기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 곳에 살고 있지 않았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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