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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실체적 진실 서면조사로 밝힐 수 있을까?

[취재파일] 실체적 진실 서면조사로 밝힐 수 있을까?
검찰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 의혹과 관련해 정연 씨를 서면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어제(12일) 오전 정연 씨 측에 전화해 다음주까지 서면진술서를 보내달라고 통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내곡동 사저 고발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 아들 시형 씨를 서면조사하고 무혐의 종결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 이틀 만에 이뤄진 조치입니다.

검찰은 원래 정연 씨를 소환할 계획이었습니다. '13억 돈상자 사건'은 복잡한 환치기를 거친 데다가 사건의 얼개가 내곡동 사저 구입 보다 복잡해 직접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류가 내곡동 사건 무혐의 종결 이후 변했습니다. 내곡동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대통령 아들 시형 씨를 단 한 차례 서면조사하고 사건을 마무리한 데 대해 인터넷에선 비난 여론이 빗발친 게 원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시형 씨는 서면조사에 그쳤는데, 정연 씨를 소환하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줄을 이었습니다. 검찰이 이런 외부의 분위기를 반영해 '정무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 아니냐는 게 검찰 안팎의 해석입니다. 결국 검찰은 고민 끝에 서면진술서를 먼저 받아본 뒤 소환 여부는 추후 다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서면조사'라는 용어는 형사소송법이나 검찰 사건사무규칙에 따로 규정돼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조사는 대면 조사를 원칙으로 합니다. 하지만 '서면 조사'라는 용어는 잊을만 하면 언론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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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 씨와 이시형 씨 말고도 가깝게는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 과정에서 정정길, 임태희 두 전직 대통령 실장이 서면 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2010년 민간인 사찰 첫 수사 때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을 지낸 이강덕 해양경찰청장도 서면 조사에 그쳤습니다. 서면조사를 받은 사람이 처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렇다보니 '서면조사'는 불기소나 무혐의 결정을 내리기 위한 요식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한 중견 검사는 "모든 조사는 대면 조사가 원칙이지만,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사안을 고려해 서면조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사 상황상 기소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지만 조사를 하긴 해야할 경우 서면조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조사 대상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에도 서면 조사를 하기도 한다"고도 했습니다.

문제는 공익을 대변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할 검찰이 과연 '서면조사'라는 방식으로 얼마나 진실에 근접할 수 있느냐입니다. 재판부에 제출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검사와 피의자의 치열한 공방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검사는 피의자의 답변에 허점이 보이면, 그 빈틈을 활용해 진실에 다가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면 조사로 이런 진실 찾기가 과연 가능할까요?

서면조사가 또 논란을 낳는 것은 그 대상이 주로 '권력의 핵심'에 있거나, 검찰이 다루기 껄끄러운 힘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검찰과 경찰을 오가며 한 번이라도 송사에 휘말려 본 평범한 국민의 입장에서 '서면 조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로 받아들여지는 게 사실입니다. 누구는 서면조사로 간단히 조사받고, 누구는 생업을 마다하고 검찰, 경찰에 불려다니며 진술 조서를 쓴다면 그 박탈감은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평범한 진리가 지켜질 때, 국민은 법의 권위를 무겁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힘 있는 자, 권력자들에 대한 서면 조사는 검찰로선 수사를 좀 더 매끄럽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긴한 수단이긴 하겠지만, 남용되면 국민의 법감정을 거스르고 상처줄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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