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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집트 대선…보수 이슬람 후보 vs 무바라크 분신

[취재파일] 이집트 대선…보수 이슬람 후보 vs 무바라크 분신
60여년 만에 군부통치를 마감할 것으로 기대됐던 역사적인 이집트 대통령 선거가 당혹스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24일 양일간 치러진 대선 1차 투표 결과 46%에 불과한 낮은 투표율 속에 보수적인 이슬람 주의자인 모하메르 무르시 후보와 혁명으로 쫓겨난 무바라크 정권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가 1,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기 때문입니다.

무르시 후보는 선거를 앞둔 여론 조사에선 단 한 번도 선두권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1차 투표에서 24.3%를 득표했고 , 샤피크 후보도 예상을 뒤엎고 23.3%를 득표해 2위로 결선에 올랐습니다.





시민혁명 세력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화”

문제는 두 후보 모두 시민혁명의 연장선에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시민혁명 주도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당혹스런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점입니다.

무르시 후보는 최대 정치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의 조직력을 갖고 있지만 여성차별과 종교간 다양성을 부정하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헌법의 기본틀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어 민주주의 확장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무르시 후보는 이런 점을 고려해 여성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보호를 약속하고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도 유지하겠다는 유화적인 입장을 밝히며 샤피크가 대통령이 되면 무바라크 정권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며 결선투표에서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인구의 10%에 달하는 콥트 기독교도들은 이슬람 세력에 표를 주면 기독교도들이 추방당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 차라리 독재권력의 후신이라도 샤피크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샤피크 후보에 대한 반감은 더욱 거셉니다. 공군 장성 출신으로 무바라크 정권 말기 항공청장으로 일하다가 시민혁명의 불길이 거세지자 무바라크가 민심 수습을 위해 내세운 마지막 총리였기 때문입니다. 쫓겨난 독재정권의 후예인 셈이죠. 샤피크의 결선투표 진출이 확정되자, 흥분한 시위대가 샤피크의 사무실을 공격하는 등 반발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샤피크 사무실 시위대에 피습...‘돌풍’ 함딘 사바히 후보 “곳곳 투개표 부정 의혹”

특히 돌풍을 일으키며 21%의 득표율로 3위를 차지한 무명의 함딘 사바히 후보 진영은 선거 부정의혹을 제기하며 결선투표 보이콧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사바히 후보 측은 일부 지역에서 사바히 후보 지지표가 무더기로 버려지고 투표권이 없는 군과 경찰이 샤피크 후보 측에 투표하는 등 광범위한 부정투표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대통령 선거 관리위원회는 사바히를 포함한 여러 후보 진영의 이의제기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함딘 사하비를 포함한 일부 후보 진영은 현재 이집트 대선 관리위원들이 전원 무바라크 정권 시절 임명된 인물로 공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며, 이번 주말 대규모 항의 집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거 불복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 이 그래프를 한 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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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관영매체인 알 아흐람의 자료인데,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와 홍해주변 등 대도시 주변과 인구밀집 지역에서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함딘 사바히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특히 지난해 시민혁명의 불길이 가장 거세게 타올랐던 지역이기도 해서 보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과거세력 간의 결선투표에 거부감이 큰 상황입니다.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선거부정 항의시위가 격화되거나, 결선투표 거부 운동이 확산될 경우, 이집트 정국이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길잃은 ‘아랍의 봄’...과거 세력 복귀. 강경 이슬람 세력 확산…민주화 지체

이렇게 북아프리카와 아랍권 시민혁명의 중심인 이집트 대선이 과거로 회귀하는 양상을 띠면서 ‘아랍의 봄’이라 불렸던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길을 잃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예멘, 리비아 등 혁명이 성공한 나라에서는 과거 집권세력이 재집권하거나 강경 이슬람세력이 확산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고, 반정부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와 바레인에서는 독재권력이 민주화 요구를 종파간 분쟁으로 몰고 가면서 주변국으로 분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종파분쟁으로 변질된 반정부시위..아랍권 전역 불안정 확산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이슬람 시아파는 시리아 접경 레바논에서 아사드 정권 반대파와 충돌해 시가전을 벌이면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고 주변 아랍국들이 레바논에 대한 여행자제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바레인에서는 집권 수니파가 절대다수인 시아파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의 도움을 얻어 진압하면서 이란 등 시아파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시민혁명 이후 아랍의 상황이 특히 끔찍한 반인륜적 범죄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학살에 대한 국제사회의 미온적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리비아-이집트 학습 효과…서방 시리아 사태 군사개입 주저 

리비아처럼 군사개입을 통해 독재권력을 몰아낸다고 해도 또 다른 종교적인 뿌리와 조직력을 갖춘 강경 이슬람 세력이 주도권을 잡거나 이집트의 경우에서 보듯 과거 집권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부활하는 등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한 마을 어린이 수십명이 잔호하게 처형당한 훌라 학살 등 반인륜 범죄에도 미국과 러시아 등 국제사회는 독재정권 제거 이후 강경이슬람 세력의 확산 등을 우려해 군사개입을 끝까지 주저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무엇보다 시리아 문제에 국제사회가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희생을 치른 뒤에 나눠가질 매력적인 열매가 없다는 점일 겁니다. 시리아엔 리비아처럼 시장을 재구성해 차지할 만한 석유자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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