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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특약란'에 사인을 슬쩍…은행의 근저당 꼼수

[취재파일] '특약란'에 사인을 슬쩍…은행의 근저당 꼼수

"A씨는 5년 전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은행원의 권유로 포괄근저당을 설정했다. 물론 A씨는 그 근저당이 주택담보대출만 담보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성실히 빚을 갚아 왔다. 그런데 A씨가 보증을 서 준 친구가 대출을 연체했다. 은행은 A씨의 집을 압류했다. A씨가 사실상 모든 은행 채무(여기서는 보증 채무)를 담보하는 포괄근저당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밝힌 포괄근저당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례. 지난해말 현재 가계대출 가운데 포괄근저당이 설정된 건 129만 2천 건. 대출잔액으로는 90조 원에 달한다. 은행이 포괄근저당을 설정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예상치 못한 채무불이행으로부터 은행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은행의 잠재적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것은 거래 상대방인 금융소비자의 잠재적 피해를 최대화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포괄근저당은 금융소비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0년 11월 포괄근저당 설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으로 은행법이 개정됐다.

직접 은행 창구를 찾아가서 확인해 봤다. 근저당 계약서는 특정근저당(*특정한 일자에 체결된 대출 계약만 담보), 한정근저당(*특정한 종류의 대출 계약을 담보), 포괄근저당(*카드,보증,어음,대출 등 사실상 모든 은행 채무를 담보)으로 구분돼 있었다.

개정된 은행법에 따라 포괄근저당 요구는 금지됐지만 특약란이 존재했다.

(특약사항 - 포괄근담보의 효력에 대해 상세히 설명들었으며, 여신거래의 편리성을 목적으로 포괄근담보 설정에 동의합니다.) 여기에 사인을 받으면서 여전히 포괄근저당을 요구하는 것이다. 꼼수다.

"포괄근저당을 설정했다가 만기를 연장할 때 근저당 종류를 한정근저당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은행 대출 담당 직원의 답은 간결했다.
"만기연장 같이 기존 대출을 갱신할 때도 설정돼 있는 포괄근저당을 일반근저당으로 전환하도록 금융당국이 제도를 바꾼다고 하더군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은행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겠네요.”

포괄근저당 요구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이후 은행들은 한정근저당을 변칙적으로 운영한다.

              

금융감독원이 소개한 B씨의 사례.

“직장인 B씨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한정근저당을 설정했다. 은행원의 권유에 따라 피담보 여신에 ‘증서대출’이라고 기재했다. A씨는 이후 주택담보대출을 모두 갚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일반자금 대출을 받았다. 불행히 직장을 잃은 B씨가 대출 원리금을 연체했다. 은행은 ‘증서대출’이 모든 대출을 포함한다는 이유로 B씨의 주택을 압류했다.”

은행들은 계약서상 담보되는 여신 항목에 ‘증서대출’이나 ‘일반가계자금대출’이라고 기재하도록 소비자를 유도한다. 이 또한 꼼수다.

다시 은행 대출 담장 직원에게 물었다.

“제가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한정근저당을 선택하면 피담보 여신 항목에 뭐라고 써야 합니까?”
“대개는 ‘일반가계자금대출’이라고 쓰니까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주택담보대출 외에 다른 대출도 담보가 되는 겁니까?”

“신용대출은 물론이고 가계자금 용도라면 모든 대출이 담보가 됩니다.”

“그러면 포괄근저당이나 크게 차이가 없겠네요?”

“효력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2009년 1,836건, 2010년 1,363건, 2011년 1,196건. 금융감독원에는 근저당 관련 민원이 이렇게 매년 1,000건 이상 접수된다. 은행 가계대출 잔액 468조 원 가운데 72%(336.6조 원)이 근저당 설정 대출이다. 한정근저당(237조 원), 포괄근저당(90조 원), 특정근저당(9.6조 원) 순이다.

일반인에게 근저당은 어렵다. 법률적 지식, 정보의 격차는 은행들이 꼼수를 부릴 수 있는 여건이 됐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근저당권 관행 개선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은행 내규와 약관, 은행업 감독규정 등을 바꿔나갈 계획이다.

3분기 중에 신규 가계대출에 대한 포괄근저당 요구는 전면 금지된다. 특약 꼼수도 안 통한다는 얘기다. 기존 여신도 만기연장이나 재약정, 대환 등 갱신하는 과정에서 포괄근저당을 해소해야 한다. 배준수 금융위원회 과장은 “이르면 7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 거쳐야 할 과정이 많아 장담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또 법 시행 전에 설정돼 만기가 많이 남아 있는 포괄근저당에 대해서도 특정근저당이나 한정근저당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한다. 이 작업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신규 대출이나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 때 포괄근저당을 금지하고 한정근저당의 변칙 운영을 막는 것은 규정으로 명확히 할 수 있지만 만기가 많이 남은 근저당의 해소 문제는 감독당국의 의지와 은행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야근을 하는데 시청자들의 전화가 꽤 걸려 온다. 내 포괄근저당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만기가 꽤 남았는데 포괄근저당을 풀 수는 없는 것이냐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와 과제로 내 건 금융당국에 걸맞는 실행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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