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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정원 직원 만났는데…" 김제동 거침없이 토로

"저같은 게 뭐라고…스스로를 사찰해 보면 절로 부끄러워진다."

김제동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화면에 비쳐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연예인인 척하지 않으려 하는 행동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겸손하려고도 했고요. 무엇보다 웃음을 주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유쾌한 인상을 남기는 듯 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가 워싱턴DC 근처 메릴랜드대에서 지난 5일 저녁(한국 시간 6일 아침) 토크 콘서트를 했습니다.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청춘들을 위한 이야기 나누기였는데, 재미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은 무엇보다 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남녀의 예를 자주 들었는데, 스님이어서 관객들도 웃으며 넘어갔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노처녀가 지하철에서 누군가 자기 엉덩이를 만졌다며 집에 와서 아무리 씻어도 불결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며칠이 지나도 그 때 생각만 하면 화가 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돈은 줬냐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하길래 지압을 해주면 해준 사람에게 받은 사람이 돈을 주는 것 아니냐. 화가 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상황은 이미 지난 일 아닌가? 지금도 화가 나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얘긴데, 마음을 바꿔 먹으면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는…

하지만 콘서트에 참석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비판적 익살꾼 김제동 씨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법륜 스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부를 법륜 스님이 혼자 진행했는데, "김제동이 빨리 안 나오고 스님은 웬 얘기를 이리 길게 하나? 할 수 있으니 이제 그만하겠다"고 웃으면서 1부 순서를 마쳤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선 김제동 씨는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웃겼습니다. 웃기면서도 관객들이 사회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도록 하는 말들을 수시로 했습니다. 특히 최근 자신이 사찰 대상에 올랐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 직후여서인지 사찰을 빗대는 발언도 많이 했습니다.

"스스로 사찰하니 불안해지는 거다. 사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더더욱...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하면 부끄러워지고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권력이 나쁜 게 아니고 나쁜 사람이 권력을 나쁜 데 쓰는 게 나쁜 것이다. 요즘은 뉴스가 정말 웃긴다. 어이가 없을 때 사람들은 웃게 마련인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 뉴스에 많이 나온다. 백분토론도 재미있다. 매주 멀쩡한 사람 몇 명이 나와서 백분 동안 토론하는데 단 한 번도 결론이 난 적 없다. 유일한 결론은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이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데 나는 기분파다. 나보고 빨갱이라고 하면, 나는 파란 옷을 입었는데, 왜요? 하면서 옷색깔 얘기하나 보다 하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주인되고 웃을 세상 위해서는 어느 쪽이든 투표해야 한다. 살아가며 재미를 찾아내고 내가 할 일을 적극 찾아내는 것 중요하다. 투표도 마찬가지. 저런 사람은 쉬게 해주는 게 좋은 일 하는 거고, 이런 사람은 일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욕하고 원망하면 안 좋지 않나. 적극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이 그래서 투표다. 정치인이나 힘있는 사람들이 웃기는 일 할 때는 웃어줘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 안 한다.

종북좌파라고들 한다. 북한에 분유 보내자고... 나쁜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고 아이들은 굶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저도 북한 가라고 해도 안 간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가라고 여러분이 가겠는가? 이런 얘기 하면 일부 언론들은 이 부분만 딱 끄집어 내서 '김제동, 관객에게 북한 가라고 권유',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는 거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는 정치인 비슷하다. 뭐 하나라도 자기가 주체적으로 한 게 없다. 우리 동화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장화홍련은 죽은 후에도 사또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억울함과 한을 얘기하고, 사또의 관등성명을 요구했다."

8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콘서트가 끝나고 김제동 씨와 법륜 스님이 특파원들과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민간인 사찰 문제로 옮겨졌고, 김제동 씨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문건에 저를 사찰한 걸로 나왔다는 건데, 그런 일을 제가 말씀 드린 게 아니지 않나? 또 문건이 제 집에서 나온 것도, 제가 쓴 것도 아니지 않나? 문건이  발견된 곳에서 쓴 사람들이 주체를 밝히고 내용에 대해서 말하는 게 옳은 것이다.

국정원 직원은 방송 담당이라고 아는 분이 만나보라고 해서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 집근처 술집에서 만났다. 두 차례 만났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 그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문성근, 명계남, 이미 색깔 드러난 사람들 보내는 게 좋지 않겠나.. 앞으로 노련하게 방송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나한테 와달라고 한 건데, 나는 간다. 가서 그렇게 보고하라고 했고, 이런 얘기하려면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했다. 압력으로는 안받아들였다. 저는 그래도 그럴 정도의 힘, 가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간다고 말 할 정도의 힘은 있으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럴 힘이 없는 분들도 많지 않겠는가? 또 저같은 경우는 너 그런 데 가면 끌고 가서 몇 대 맞는다고 했으면 안 갔을 거다. 그리고 압력으로 안 받아들였다고 하면서도 이 얘기를 한 것은 이런 시대를 만들어놓은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3년 전 이 문제를 상의했던 분들은 기억할텐데, 그 때는 아, 진짜 끌려가서 고문당하신 분들도 있는데, 뭐 가지 말라고 하는 말 들었다고 공개하나, 쪽팔리게... 이런 기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문제가 불거졌으니까 당사자로서 마무리지어야겠다 해서 말하는 거다. 아,그리고 제가 국정원 전 직원 상대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참...

사찰의 징후를 느낀 것은 없다. 사찰했다면 내가 징후를 느끼게 하는 건 프로답지 못한 일 아닌가? 크크.. 이번 일 터지고 집에서 며칠 생각해봤는데, 내 주변사람들과 가족, 그래봐야 뭐, 그렇고 동료 연예인들... 그들까지 했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두렵다.

현 정부 들어와서 방송프로그램이 계속 줄어들고 끊기고 하는 것은 뭐... 제가.. 그런데 골든벨(KBS) 같은 경우는 정황상 가만히 놔두셔도 제가 절로 끊겼을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아마도 사찰 논란이 불거진 후 카메라 앞에서 김제동 씨가 자신의 얘기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도 MBC 노조관계자와의 인터뷰라는 형태로 활자화된 적은 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출연도 했다고는 하는데, 멀리 미국까지 와서 특파원들과 사찰이라는 유쾌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주제를 갖고 얘기를 하게 돼 김제동 씨도 그렇고 특파원인 저도 좀 그렇더군요. 간담회를 마치고 김 씨와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데 김 씨의 한마디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솔직히 저한테까지 그렇게 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요즘 SNS 팔로우하면 제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다 알려주는 데 말이죠. 그런 일 하는 데가 인력이 많으신가 보다. 저같은 사람 겁낼 필요가 전혀 없는데, 사람 웃기는 재주 말고는 별다른 것도 없는 사람인데..."

김제동 씨는 철들고 이틀 이상 술을 걸러본 적이 없는데, 벌써 19일째 술을 안 마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사찰하기 위해 끊은 거라고 흰소리도 하더군요. 지금 김제동 씨가 유일하게 하고 있는 지상파 프로그램이 SBS 힐링캠프인데요, 김씨는 그 것도 그만두고 자신에게 파업할 기회를 줄지를 고민중이라고 했습니다. 개그맨도, 코미디언도 아니면서 사람을 웃기는 남다른 재주가 있는, 그러면서 사회문제, 정치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내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회참여적이며 비판적 통찰을 하려 애쓰는 익살꾼 김제동 씨와 다음에는 세상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그 속에 담겨있는 질펀하며 질박한 웃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졌습니다. 사찰같은 얘기 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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