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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부러진 화살' 사법부 겨누다

허구 논란 무의미…법원 신뢰 회복 계기 돼야

[취재파일] '부러진 화살' 사법부 겨누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수 복직 소송에서 패소한 김명호 성균관대 전 교수가 담당 판사를 석궁으로 공격한 실제 사건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제작비가 5억 원밖에 들지 않았고, 화려한 CG나 추격전, 격투 장면 하나 없지만 매주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에 대한 관심, 무능하고 부패한 재판부와 억울한 피고인이라는 뚜렷한 선악 대비를 중심으로 한 선명한 스토리가 인기 원인으로 보입니다.

관객 동원은 곧 여론 조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비난과 질책이 이어졌고 불신은 팽배해졌습니다. 저는 법조를 취재하는 기자여서 개봉 초기 직접 관람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던 관객들이 "저래서 판사들은 안 돼", "사법부 싹 갈아야 돼"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걸 옆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제2의 도가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옵니다. 아동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린 영화 '도가니'처럼 '부러진 화살'이 사법부 개혁의 시발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법부는 이 영화를 개봉 전부터 껄끄럽게 여겼습니다.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사법부는 각 지방법원의 공보판사들에게 해당 사건 재판의 사실 관계를 담은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영화 개봉 후 각 언론에서 영화 관련 질의가 있을 경우 참고용으로 만든 자료였습니다.

이 정도 말고는 사법부는 처음엔 영화가 일으킨 논란에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영화는 허구일 뿐인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50만, 100만을 돌파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을 적극 알려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많았고, 허구를 가미한 영화가 사법 불신 풍조를 조장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결국 지난달 27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이 나서서 "부러진 화살은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이고 결과적으로 사법테러를 미화하고 사법불신을 조장하는 것이어서 심히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1심에서 이뤄진 각종 증거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항소심의 특정 국면만을 부각시켜 전체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대법원 판결과 김 전 교수의 형집행이 끝난 상황에서 구체적인 재판 쟁점의 진위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사안의 본질은 부러진 화살이 어디갔느냐, 내복과 조끼에 묻은 피가 왜 와이셔츠에는 묻지 않았느냐가 아닙니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재판 당사자가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갔다"는 게 가장 중요한 사건의 본질입니다. 김 전 교수가 판사에게 위협만 하려고 했든, 실제 쐈든, 쏘려는 시중만 했든 "판결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판사를 공격(하려) 했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사법부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영화의 허구성을 지적하기 보다 왜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지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수백억 원을 횡령한 재벌 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걸 보며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할지 좀 더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합니다. 높은 법대에서 국민과 괴리된 것은 아닌지 살피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다행히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달 30일 서울고등법원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이 재판 실상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영화를 보고 어째서 재판의 전형이라 생각하고 법원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갖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나 생각해봐야 한다"며 "왜 사람들이 법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세한 팩트들의 진위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사법부와 국민 사이를 보다 가깝게 연결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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