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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집트 총선 집중 분석해보니

[취재파일] 이집트 총선 집중 분석해보니
지난 주 중동과 서방의 시선이 이 곳 이집트로 집중됐습니다.

시민혁명 이후 이집트의 진로를 결정하는 총선이 시작됐기 때문이죠. 국내에선 관심이 그리 높질 않습니다만 알 자지라는 물론이고 서방 주요 언론들도 연일 주요뉴스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이집트는 물론이고, 중동전세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이번 이집트 총선의 1차 투표 결과를 이집트 국내 정치적 영향과 중동 정세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한 번 분석해 보겠습니다.

반 군부시위의 여파 속에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치러진 1차 투표에서 투표율이 62%로 이집트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높았습니다.

선거를 관리한 군 과도정부가 일단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투표의 내용인데요,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자유정의당이 36.6%,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누르당이 24.4%의 득표율로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30년 무바라크 독재기간 동안 숨죽였던 이슬람 세력들이 압승을 거둔 것입니다.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들은 13% 조금 넘는 득표에 그쳤습니다.

완전히 끝났 것은 아니지만 전체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밀집한 도심지역에서 진행된 1차 투표 결과로 남은 다른 지역 선거에도 적지 않을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은 이슬람 세력들의 영향력이 더 큽니다.

그렇다면 선거 결과는 과반수를 넘는 하원의석을 이슬람 세력들이 장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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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거결과가 이집트 국내 정치와 시민혁명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가 궁금할 만한데요, 저만 궁금한가요? 여하튼....

전체적으로 이슬람세력들의 득표는 과반수를 훨씬 넘고 있지만, 특정 정당이 과반을 넘지는 못해, 이들이 의회를 장악했지만 연정 파트너가 될 지는 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이집트 최대 정치세력으로 성장해서 가장 많은 득표를 올린 자유정의당을 이끌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요, 반미, 반이스라엘 성향이 분명히 있지만, 근본주의적 색채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이슬람법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과거엔 이스라엘과의 중동평화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적이 있었지만 선거 국면이 시작되면서 표면적으로 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24%가 넘는 득표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한 누르당. 안팎의 우려를 부르고 있는 정당입니다. 이집트에선 살라피스라고 불리는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이끌고 있는 정당인데, 우선 종교자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올해 들어 몇 차례나 되풀이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낸 이집트 기독교, 콥트교와의 충돌사건에 늘 관련이 돼 있었고요. 또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처럼 여성이 운전을 하거나, 신체를 노출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술을 팔고 마시는 것도 금지하는 등 이슬람 율법을 현실에 강력히 적용하자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시민사회세력이 중심이 된 자유이집트 연합은 이번 1차 총선에서 13% 조금 넘게 득표해서 사실상 참패했습니다. 지식인들과 젊은 학생층이 대거 결합했지만 동네 구석구석마다 자리하고 있는 이슬람 사원 모스크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이슬람 정당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상황이죠. 이들은 종교의 자유 보장은 물론이고 경제정의 실현과 사회개혁 구호 등으로 보면 시민혁명의 정신에 가장 근접한 정치세력입니다. 이들은 이슬람정당들이 시민혁명 과정에선 방관자처럼 구경만 하다 시민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인 선거라는 열매만 따먹으면서 성과를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장 우려스런 경우는 무슬림형제단 계열로 최다득표 정당인 자유정의당이 근본주의 세력인 누르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강경한 정책들이 채택되면서 오히려 시민혁명으로 만들어진 민주주의 틀과 내용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입니다. 젊은 층과 시민 사회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엘 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 기구 사무총장도 이런 가능성을 우려해서 온건한 이슬람세력이 과격한 근본주의 세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아직 총선 투표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다득표자인 무슬림형제단 계열의 자유정의당이 누구와 연합할 지에 대한 구상을 밝힐 시점은 아니죠. 하지만 그래도 초록은 동색이라고 같은 이슬람 계열 정당들과 연합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만은 사실이죠. 왜냐하면 시민혁명 진행 과정, 그리고 최근의 반군부 시위 진행 과정에서 시민사회세력과 무슬림형제단 간에 쌓인 무슬림형제단의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입니다.

전면에서 독재에 항거하면서 피를 흘렸던 시민들로 인해 폐쇄됐던 정치공간이 열리자, 무슬림형제단 등이 나서서 자신들의 세를 불리기에 급급했다는 피해의식이 시민혁명 세력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까지 계속된 반군부시위에 무슬림형제단은 아예 결합하지 않았죠. 군부 즉각퇴진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세력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은 더 이상은 혼란은 안 된다며 군부 아래 선거를 일단 치르자고 선을 그었습니다. 사실은 시민사회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더 넓어지기 전에 선거를 치러야 자신들의 안정적인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다만 경제의 절대적인 부분을 관광산업과 외국인 투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폐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로는 국가 체제 자체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무슬림형제단이 내린다면 정치적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세력과 연대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만약 시민사회 세력과 무슬림형제단이 연합한다면, 이집트의 국가 체제를 최근 아랍권에서 비록 독재적 성격이 완전히 탈색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터키의 국가발전 모델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슬람을  실체적으로 인정하되 국가운영과 법 체계의 기본과 종교를 분리하는 형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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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집트의 선거상황을 가장 걱정스런 눈을 지켜보고 있는 게 이스라엘과 미국입니다.

시민혁명으로 친미독재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가시방석에 앉게 된 상황인데, 최근 총선을 치른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 모두 껄끄러운 이슬람세력들이 압승을 거뒀죠.

  
  

특히 섬처럼 고립돼 위태롭지만, 그래도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이 버틸 수 있는 게 이집트와의 중동평화협정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결국 불안하지만 평화체제를 유지해 온 조정자였던 셈입니다. 서로 평화 보장하는 대신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스를 공급받고 있죠. 최근 이 가스관이 엄청나게 자주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만 봐도 최근의 반 이스라엘 정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이집트에서 이슬람세력, 그것도 중동평화협정 깨자는 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한다면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입니다. 중동의 유일한 통로인 셈인 이집트가 등을 돌리면 당장 경제적으로 가스공급을 끊어 버릴 수 있고, 정치적으론 중동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군사적으로 이란 핵 무기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바로 옆에 또다른 적성국을 두게 돼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후원자이자, 독재국가를 지원하면서라도 영향력의 유지하려 했던 미국 역시 이미 과거 중동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으며, 또다른 차원의 접근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데요, 확실한 건 어떤 정치세력이 들어서더라도 최근 백년 이 지역을 지배했던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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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에선 별 관심이 없어도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정세 전체를 뒤바꿀 수 있는 중요한 선거가 지금 이집트에서 치러지고 있는 총선입니다.

30년 독재 30년 치르는 이집트 총선은 어수선하고 실수도 많고 어설픕니다. 투표 안 하면 우리 돈 10만 원 벌금 내야하는 말도 안되는 법도 시행 중이고요. 하지만 어떤 정치세력도 투표 자체를 방해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무모함은 찾아 볼 수 없고 시민들의 표정도 진지합니다. 반군부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타흐리르 광장의 시민들 상당수도 교대로 투표를 하고 광장을 지킬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민주주의 역사가 길지는 않아도 이집트의 시민들에게 교훈은 줄 수 있다고 믿고 우리  한국 시민들이 요즘 상당히 화가 나실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한 표 행사의 권리를 유린하려는 잔머리를 굴리는 정치세력이 아직도 존재하니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 만큼이나 지켜내는 데 얼마나 큰 대가와 노력이 필요한지, 선거를 둘러싼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이집트,  그리고 한국 시민들에게도 더욱 뼈져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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