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집창촌을 부수는 여인 - 서민정

Sum In A Point of Time, installation, expanded polystyrene, steel cable, nylon cord, 2011

순백색의 건물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언뜻 보면, 아테네 신전이 지진이나 폭격으로 부서진 듯 합니다. 도대체 어떤 건물인데, 어떤 사연으로 이렇게 부서지게 된 걸까요?

사실 이 건물은 현재 영등포역 앞 집창촌의 한 건물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평소 붉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쇼윈도, 소위 ‘아가씨’들이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뒤부터는 ‘영업장’이 나타납니다.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작은 방 8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방에는 머리 하나 나가지 못할 정도 크기의 창문이 달려 있습니다.

실제 집창촌의 모습을 스티로폼을 이용해 70% 크기로 재현해 놓은 서민정 작가의 ‘미술작품’입니다. 완성이 된 뒤, 서 작가는 작은 체구로 손과 발을 이용해 이 건물을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원래 독일에서 활동하던 서 작가는 올해 초 문래예술공장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문래동을 오가려면 항상 영등포역 앞을 지나야 했는데, 한 골목에서 퍼져 나오는 붉은 빛이 심상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안을 들어가 봤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건 강한 ‘아우라(Aura)’였습니다. 평소 ‘아우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서 작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작품 소재였습니다.

게다가 집창촌 일대는 당시 한창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들어선 대형 백화점과 쇼핑 단지 때문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대형 복합단지가 들어설 계획이 속속 생기면서, 집창촌은 사라져야만 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당장 생계가 달려 있는 집창촌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바 ‘성(性) 산업인’(집창촌 업주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들은 당장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서 작가는 없어질 순간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모습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서 작가의 작업은 시작됐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을 왜 해야 하느냐는 ‘성 산업인’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설득을 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성 산업인’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을 찾았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이들의 마음을 열었고, 결국 업소 취재를 허락 받았습니다.

사실 밖에서만 슬쩍 봤을 뿐이지, 업소에 들어가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은요. 그곳은 어땠을까요? 가장 궁금했던 점을 서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그냥 여자 방이에요."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여느 20대 여성의 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작은 방 안에 침대, 서랍장, 냉장고 하나가 놓여 있는데, 취향과 개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레이스가 달린 침구에, 분홍빛의 장식들이 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건 ‘아가씨’가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자수’였습니다. 손바닥만한 천에 자수를 놓았는데 가장자리를 비즈로 장식한 ‘작품’으로 보였다는 것이죠.

                    


이렇게 어렵게 취재한 ‘성 산업인’들의 공간은 서 작가의 손에서 ‘작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이 작품을 ‘파괴’한 이유를 서 작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조와 파괴는 다른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단어라고 생각한다. 폭파하면서 확장이 되고, 해체가 되면서 다른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폭파’, ‘파괴’의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립니다. 서 작가는 눈에 띄지 않고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는 그 순간을 잡고 싶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우리가 보는 ‘폭파의 순간’은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2차원에서 벌어지는데, 그 순간을 3차원으로 벌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찰나의 영원성’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파괴의 순간’, 서 작가는 ‘부순다는 느낌’보다 ‘드로잉(drawing)'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공간을 드로잉하고, 그들의 시간을 드로잉한다는 느낌........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삶이 들어있는 공간과 시간을 잡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요.

‘부서진 집창촌 작품’은 새하얀 색을 띠고 있습니다. 조명도 새하얀 형광등이 비추고 있습니다. 사실 형광등을 끄고 노란빛의 조명만 비추면 더 환상적이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왜 굳이 새하얗게 보이도록 고집했을까요.

                                     

                       

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한 가지 이미지만 떠오르면 그 작품은 실패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도 ‘건물이 부서졌구나’ 외에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빙산의 조각’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단지 ‘집창촌이 부서졌다’는 사회적인 의미를 넘어, ‘빙산의 조각’이라는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초자연적인 감동까지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집창촌과, 아무 배경지식 없이 보는 집창촌의 모습은 확실히 다릅니다. 흑과 백, 미와 추를 무 자르듯 나누는 2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그 경계가 되는 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서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입니다. 아무런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그런 색이 바로 ‘하얀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얀 작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집창촌’ 하면, ‘검붉은 빛깔’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뿜어내는 특유의 색깔도 그렇고, 그곳에 있는 여성들의 느낌도 -마치 카르멘의 치마처럼- 검붉은 색 같아서였죠. 하지만, 단지 생계 방식만 조금 다른 사람들일 뿐,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색깔이 칠해지는 것이죠. 결국 그들의 색깔은 ‘하얀빛’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폐기됩니다. 언젠가 사라질 것이 분명한 그들의 운명과 너무나 닮았나요. 서글프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서민정 개인전 'Sum In A Ponint of Time' - 갤러리압생트, ~12월 16일까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