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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애인 성폭력 '엄벌'에 처하려면

중요한 것은 제도보다 의지

[취재파일] 장애인 성폭력 '엄벌'에 처하려면

아동,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가 최근 끊임없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립니다. 그럴 때마다 언론에서는 어느 법원에서는 몇 년형이 선고됐다, 집행유예가 나왔다 등 수많은 기사를 쏟아냅니다. 이렇게 꾸준한 여론의 관심을 찾아보기 힘든데다 정부의 대책도 많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수많은 성폭력 사범들이 있다는 데 대한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은 흔히 형량이 너무 낮다는 비판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성폭력 사범에 대한 '적정한' 형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우리 형법은 성폭행범에게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297조) 3년을 넘는 징역형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형량은 꽤 높은 셈이지요. 다만, 판사가 기본적으로 절반까지 감경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년 6개월부터 형량이 정해집니다.

               


이 표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성폭력 범죄 양형기준입니다. (실제로는 범죄 유형에 따라 더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법원 판결을 접할 때 흔히 나오는 '죄질이 불량하다'는 경우에 해당하면 가중 범위에서 형량을 정하고, '정상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 할 때에는 감경 범위에서 형량을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이런 재미없는 얘기를 계속한 이유는 바로 다음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신지체 3급인 14세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범인은 성범죄 전력은 없습니다. 폭행과 협박을 사용한 범행은 아니었고, 인터넷 채팅을 통해 정신지체가 있는 피해자를 유인했습니다. 이 형량은 적정한 것일까요.

최근 형사 판결문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요즘에는 판사들이 양형기준표에서 범행이 어느 사례에 해당하고, 어떤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에 형량이 이렇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 사건의 1심 재판부 역시 위에 적은 표를 보고 '기본' 영역에서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서울고등법원이 1심 판결을 파기합니다. '피해자가 범행에 취약한 경우'에는 '기본' 양형범위가 아닌 '가중' 범위에서 형량을 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 남성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합니다.

저는 이 판결이 내린 결론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할 이번 판결의 결론이 낯설게 다가오는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법률가들은 오죽할까요. 영화 '도가니' 논란에서도 아시겠지만 개선하고 싶었지만 제도가 따라오지 않아 못했다는 해명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요.

성범죄 사범에 대한 법원의 형량이 최근 대폭 강해졌다는 말을 이곳 저곳에서 많이 듣습니다. 장애인 상대 성범죄 조항에서 문제가 된 '항거불능' 상태를 해석하는 기준은 점차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앞에 나왔던 성범죄 양형기준은 조두순 사건 이후 수정된 것입니다. 뒤늦게나마 나아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왜 하지 않았나요.

제도 개선, 물론 중요합니다. 열 명의 악인을 처벌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은 당연히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성범죄 피해자를 자기 가족으로 바꿔 생각해야 겨우 정신을 차리는지 모르겠다'던 지인의 말이 귀에 쟁쟁합니다. 마음에 새겨야 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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