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세대간 일자리 전쟁 현장을 가보니

[취재파일] 세대간 일자리 전쟁 현장을 가보니
지난주 목요일 새벽 5시, 경기도 부천의 한 직업소개소를 찾았습니다.

사무실에는 1년 넘게 이 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사무실을 떠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거리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보통 직업소개소에서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4~50대나 60대 중년층이 대부분입니다만 최근 제가 찾아간 사무실 풍경은 좀 달랐습니다.

사무실에는 20대 근로자들도 있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알음알음 사무실에 온 대학생들. 물론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당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2, 3주 가까이 일을 해온 학생들도 있다고 합니다. 용돈이나 등록금 마련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방학이 시작된 이후 직업 소개소에는 이렇게 근로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졌습니다. 일자리 경쟁도 그만큼 더해지겠죠. 그런데 일자리가 들어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일을 해온 중년층보다 학생들이 사무실을 먼저 나섭니다. 구인자들이 학생들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삿짐 나르기나 공사, 단기 경비와 같이 중년층 근로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노동의 현장에서도 대학생들을 먼저 찾았습니다.

주택의 타일을 교체하는 공사 현장을 따라가봤습니다. 주로 2인 1조로 공사를 진행하는데, 이번 공사에서는 60대 근로자와 20대 학생이 함께 일을 하게됐습니다. 타일을 교체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콘크리트를 깔고 타일을 붙이는 등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역시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작업을 30년 넘게 해 온 60대 근로자는 능숙하게 작업을 합니다. 반면 난생 처음 공사 현장에 온 20대 학생은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사를 하는 중간중간 타일을 정리하고 흙을 나르고...체력 좋은 근로자가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아 쉴 틈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작업 경험이 많고 기술이 있는 60대 근로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젊은 근로자와 함께 일하니 어떻느냐는 질문에 "체력으론 젊은 친구를 당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한 달에 절반 정도만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여느 때 같으면 중년층 근로자 2명이 할 일이지만 요즘엔 20대 근로자가 함께 하는 현장을 보니, 중년층 근로자들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부터 비가 왔습니다.

직업 소개소에는 전날보다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비가 오면 일자리가 줄기 때문에 일을 구하러 나오는 사람들도 적은 편입니다. 전날 일자리가 정해진 근로자들은 예정대로 사무실을 나섰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3시간 째 버틴 한 50대 근로자는 결국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목재 다루는 일만 해온 이 근로자는 다른 업무가 들어와도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업 습득력이 빠른 젊은 층에 비해 중년층 근로자들은 기회도 적지만, 정작 저마다의 이유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면서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지원률이 크게 늘었습니다. 한 아르바이트 정보 제공 업체에 따르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르바이트는 과외, 그 다음이 사무 보조였습니다. 비교적 실내에서 하는 일들로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종들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등록금이다 뭐다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과외는 소비자들이 대학생 대신 전문 과외 교사를 선호하고 있고, 사무 보조 인력은 한정돼 있습니다. 등록금 뿐만이 아닙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스펙쌓기 비용, 이를테면 어학연수나 인턴십 경험을 위해 필요한 자금도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대학생들은 이제 직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실제 조사 결과 방학 기간 일용직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학생들은 학기 중에 비해 232%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중년층과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20대, 저마다 절실한 이유로 어느 쪽도 일자리를 놓고 양보를 할 수 없는 현실. 세대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자리 경쟁이 일용직 노동 현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