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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집트에도 근본주의 논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약물 중독 늘어나

[취재파일] 이집트에도 근본주의 논란

1. 노르웨이 오슬로를 강타한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충격적인 테러 소식이 이곳 카이로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도 톱 뉴스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멀게는 십자군 전쟁과 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최근의 대테러 전쟁까지 지난 수 천년 간 이름과 형태를 달리해 가며 여러 차례 반복돼 온 서구의 수탈적 중동 전략을 서구 기독교 세력의 음모로 받아 들여왔기 때문인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한 이번 테러를 이 지역에선 더욱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민혁명 이후 중동 지역에서도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근본주의 세력이 세를 넓히고 있어서 걱정스런 대목인데요, 실제로 이집트에서는 살라피스트라고 불리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을 포함한 이슬람 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살라피스트와 무슬림 형제단까지, 이슬람 주의자들의 성향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시민혁명 이후 새로 만들 게 될 헌법체계에 대해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우디나 이란처럼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그대로 적용하는 이슬람 국가를 만들자는 것인데요, 하지만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지식인층과 대학생등 젊은층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 진다면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법 적용으로 인해 수백 년은 퇴보할 것이라면서 이들의 주장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살레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예멘에서는 알 카에다 추종 세력이 크고 늘고 있고, 또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리비아의 반군 세력 가운데 상당수는 알 카에다 출신이라는 미 CIA의 분석도 나온 적이 있죠.



2. 그리고 시민혁명 이후 실업난이 심화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약물 중독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중동 지역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 밀수된 나르코틱이라는 마취제, 그리고 트라마돌이라는 진통제가 환각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곳 젊은이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시중 약국에서는 이런 환각제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데 최근엔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시민혁명 이전에도 이 지역에선 극심한 빈부격차 등 사회적 박탈감 등이 커지면서 헤시시같은 대마초에 중독된 사람들이 문제가 돼 왔습니다. 과거에는 부패한 경찰들이 이런 헤시시 유통에 직접 가담해 온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시민혁명 이후 경찰들이 대거 해고되면서 오히려 헤시시 밀매가 잘 이뤄지지 않고 대신 환각 약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마초 유통에까지 나섰던 부패한 이집트 경찰. 시민혁명 때 왜 그렇게 많은 경찰서들의 시민들의 공격으로 불에 탔는지 짐작할 만한 대목입니다.

3. 최근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30년 독재 체제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들이 진행 중인데요, 그런데 지난 주 이집트 고등법원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고등법원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부인 수잔 무바라크를 쓰고 있는 학교나 건물, 시설, 거리 등에서 이름을 지우라는 일심법원의 판결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이런 판결의 배경은 뚜렷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이집트의 경찰학교는 무바라크 폴리스 아카데미, 지하철역도 무바라크 역 등 독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시민혁명 이후 무바라크 지하철 역의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을 정도로 무바라크 30년 독재 체제를 증오해 왔는데, 일부 친 무바라크 세력들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것에 법원이 손을 들어 준 것이죠.

시민혁명 과정에서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지연되는 것과 더불어 이런 반역사적 판결이 이어지면서 많은 시민들은 법원 판결을 불신하는 차원을 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과 구세력 중심의 개혁 작업에 의구심을 품고 있어서, 최근 몇 년간 역사의 퇴행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과도 비슷한 상황 같습니다.

4. 최근 이집트에서는 부패한 무바라크 시절 관료들이 과도정부 내각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과도정부 내각이 잇따라 사퇴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상황을 묘사하는 만평을 싣고 있는데요, 이집션 가제트는 무역회사에서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이집트에서 공급이 달리고 있는 장관들이 수입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 만평을 실었습니다.

무바라크 30년 독재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은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권력과 결탁한 기득권층의 부패를 꼬집는 내용입니다. 하도 썩어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장관감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위장 전입에 수상한 병역 면제가 입각 자격처럼 된 한국도 뭐 그리 나아 보이진 않는군요.

5. 그제는 중동을 서구로부터 독립시키고 부패한 사회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꿔 이집트는 물론 중동 전역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나세르 혁명이 59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곳 언론들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농지개혁을 통해 서민경제를 돌봤던 나세르를 가족과 측근으로 정치, 경제 전 영역을 장악하고 부패와 사리사욕으로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 무바라크 일가와 비교하는 기사를 잇따라 싣고 있습니다.

무바라크 치하에서 철저히 통제당했던 언론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락한 무바라크 일가를 물어뜯는 모습에서 살아있는 권력엔 약하고 죽은 권력엔 가혹한 한국 언론의 씁쓸했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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