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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찰은 마음대로 뒤져도 되나요?

[취재파일] 경찰은 마음대로 뒤져도 되나요?
지난해 4월 중순, 경찰이 갑자기 자신의 집에 들어와 다짜고짜 집을 수색했다던 김모 씨를 만났습니다. 김 씨가 말하는 사건은 이렇습니다.

집에 있던 김 씨는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구'란 말을 듣긴 했지만, 잘 모르는 상태서 일단 문을 열었습니다. 건장한 남자 3명이 들어와 집안을 둘러보고,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걸린 달력에 쓰인 낙서들도 자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김 씨는 '누구냐, 왜 그러냐'며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분간 집을 뒤진 남자들은 김 씨의 신원 조회를 한 뒤에야 자초지종을 말해줬습니다. 그제서야 경찰이라는 신분을 정확히 밝히고 체포 영장을 보여주면서, '절도 용의자 홍모 씨를 쫓고 있는데 IP 추적을 해보니 주소지가 김 씨의 집으로 나왔다'는 설명했습니다. 혹시 이 집에 숨어있을까 찾아봤지만 아닌 거 같다고 했습니다.

김 씨는 황당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집을 뒤지더니, 알고보니 다른 집이었다?

두어 달이 지나 경찰서에 찾아가 그날 집에 찾아왔던 경찰들에게 따졌습니다. 경찰들은 이런 저런 사유를 들어 김 씨를 달래려 했지만, '아무리 경찰이라도 마음대로 수색하는 게 말이 되냐'는 생각에 국가인권위에 사건을 진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더 지난 지난달 말, 인권위는 해당 경찰들에게 경고 조치와 인권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결정문을 보내왔습니다.

김 씨의 설명을 들은 뒤 영장 집행 절차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 인권보호수사준칙 등 수사를 받는 대상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조항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압수, 수색을 당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법에 따르면 체포 영장을 보여주지 않은 채 집을 수색한 건 엄연히 불법인 셈입니다.

해당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경찰들의 얘기는 좀 달랐습니다.

강력반 경찰들은 절도 피의자 홍모 씨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가 접속한 IP 주소를 확인해보니 한 PC방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케이블 방송업체를 통해 알아보니 공교롭게도 김 씨의 집 주소가 나왔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이 업체가 주소를 잘못 알려준 겁니다.)

어찌됐건 경찰들은 그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PC방인줄 알았는데 평범한 주택이 나왔습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집을 살펴보니 좀 수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대문에 CCTV가 설치돼 있었고, 인근 주민들 얘길 들어보니 이 집에서 소음이 자주 들린다는 겁니다. 경찰들은 PC방은 아니지만 뭔가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일단 문을 두드렸습니다.

경찰들은 김 씨가 문을 열어줘서 수색을 하게 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처음부터 경찰 신분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집을 둘러보고 신원조회도 해보니 피의자와는 관련이 없는 거 같아 자연스레 체포영장을 보여주며 경위를 설명했고 사과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까진 김 씨와 경찰 사이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왜 사전에 영장을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경찰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영장부터 제시하면 되려 피의자를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법대로라면 김 씨에게 영장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가 피의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사에 대해 설명해주면, 혹시나 김 씨가 피의자와 연관이 있을 경우 피의자가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여러번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김 씨와 경찰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사건을 조사한 인권위는 김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경찰이 말한 '긴급한 상황'에서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피의자와 관련 없는 일반인이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불필요한 피해를 입었다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영장을 반드시 제시하도록 한 법을 어긴 경찰이 문제인지, 아니면 긴급한 현장 상황을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어느날 처음 본 남자들이 갑자기 내 집에 들어와 아무런 설명 없이 집을 뒤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전 무서울 것 같습니다. 법이고 뭐고, 제가 피해자라면 두번 다시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사를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95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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