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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비탄 맞고도 아무말 못하는 이유는?

초등학생에게 비비탄 쏘는 교사 취재 후기

[취재파일] 비비탄 맞고도 아무말 못하는 이유는?

 지난 토요일(16일) SBS 8뉴스에서 보도한 '학생들에게 비비탄 총 쏘는 교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취재진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이 비비탄 총을 갖고 놀면 엄격히 지도해야 할 교사가, 오히려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총을 쏘다니요?

직접 가보니 상황은 더 나빴습니다. 해당 교사의 서랍 속에서 나온 그 총기는 실제 권총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묵직하고 정교했으며, 스프링이 아니라 가스로 발사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난감 비비탄 총은 대부분 스프링식입니다.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해 격발하는 방식으로 파괴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스프링식이라고 해도 신체를 겨냥한다면 위험할 수 있지만요. 반면 가스식 비비탄 총은 압축가스의 압력을 이용해 격발하는 방식입니다.

조작하기에 따라 공기총에 비견할 탄환 속도를 내기도 합니다. 인터넷이나 흔히 건샵이라고 불리는 모의총기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가격대는 모델에 따라 수만 원에서 백만 원을 호가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문제의 교사가 갖고 있던 총은 시중에서 30만~35만 원 선에서 구매할 수 있는 종류입니다.

그런 위험한 총을 학생들에게 사용한 해당 교사의 해명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제가 A형 간염에 걸려, 건강이 좋지 않아 학생들이 있는 곳까지 가서 지도할 힘이 없었습니다.", "아이들하고 친해지려고 장난 식으로 했던 겁니다."

그러나 맞는 아이들에겐 결코 장난일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해당 교사가 떠드는 학생들에게 체벌로 비비탄 총을 쐈고, 아이들은 무서워서 책상 밑에 숨었다고 말했습니다. 운동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해당 반 학생은 "(총을 맞아 생긴) 멍이 2주 이상 갔다"고 했습니다. 눈 밑에 비비탄을 맞은 친구가 있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총알이 몇 센티미터 위를 향했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취재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학부모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자기 자식이 비비탄에 맞아 몇 주 동안 멍이 들었는데도 알지 못했던 부모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비비탄으로 체벌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학교에 아무 말 하지 않았던 부모들은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심지어 한 부모는 왜 보도를 해서 일을 키우느냐고 취재진을 탓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일 일을 키우지 않았다면, 그 총알이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는 건 애써 무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담임이 바뀌지 않는 한, 결국 다치는 건 아이들뿐이라고 생각하셨을지 모릅니다. 만일 이 학교가 수도권의 작은 마을이 아니라 서울 강남에 있고, 이 반에 속칭 힘 있는 부모의 자식이 다니고 있었다면,  아마 뉴스로 알려지기 전에 부모들이 먼저 나섰을 겁니다.

한 학부모는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된 건 알았지만 애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학교에 얘기를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갑은 선생님"이라는 우스개는, 서민이 사는 이 동네에선 더욱 처절한 진실이었던 셈입니다.

보도가 나가자 학교는 징계절차 없이 경위서를 받고 재발 방지를 약속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지난 주말 학교는 해당 반 학부모들을 모아 "원하시면 담임을 교체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답니다. 근데 부모들은 누가 나서서 담임을 교체해달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사가 보도된 뒤 관할 교육청에서 조사에 나섰다고 하니 후속조치를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학부모가 나서서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보면 볼수록 이 초등학교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나라'였습니다. 학생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 없어 비비탄을 쐈다는 교사, 애들이 다칠까봐 더 위험한 상황을 방치한 학부모들, 제대로 된 징계조치 없이 학부모들을 설득해 무마하려는 학교... 저로선 어느 것 하나 납득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우리 아이들이 처음 배우는 공적 교육기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순투성이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교사가 비비탄을 쐈다는 사실 자체보다, 이후 학교와 학부모들의 모습에서 이미 붕괴돼버린 교실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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