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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선 왕실의궤…세계 최고 '기록 문화'인 증거

[취재파일] 조선 왕실의궤…세계 최고 '기록 문화'인 증거

 "외규장각 도서, 왜 이리 호들갑인가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라는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요?"  프랑스로부터 반환받기 시작한 외규장각 도서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받는 질문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도서의 의미 보다는 약탈됐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듯 합니다. 힘없던 조선말 열강의 힘에 강제로 빼앗겼다는 그 사실이 새삼 떠오르면서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겁니다. 여기에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는 방식이 '반환'이 아닌 '임대'라는 석연찮은 점은 서러움을 더 자극하는 구실을 하는 듯 합니다.

이런 과정의 이해도 중요하겠지만, 이제는 우리 품으로 돌아온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100년 이상 잊혀졌던 외규장각 도서를 재불학자 박병선 씨가 왜 그리 열심히 찾아나섰는지, 이후 우리 정부와 학자들이 이들 도서 반환을 위해 공을 들였는지, 약탈당해 먼 이웃땅을 떠도는 문화유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반환되는 외규장각 도서의 대부분은 조선 왕실 의궤입니다. 의궤란 조선 왕실의 중요행사를 기록한 일종의 종합보고서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조선 의궤를 접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성황후국장의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장례의 모든 절차가 꼼꼼히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국장 행렬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부분을 복사한 뒤 연결하면 그 길이가 무려 25미터나 됩니다. 의궤가 실제 모습을 축소한 것을 감안할 때, 실제 장례행렬은 얼마나 길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용의 꼼꼼함도 놀랍습니다. 명성황후의 각종 유물은 무덤에 함께 묻히는데, 행렬 앞부분은 이들 유물을 실은 가마와 신주를 담은 가마 등이 차지합니다. 그 뒤로 이상한 모습의 사람들이 뒤따르는데요, 얼핏 보아 무슨 가면을 쓴 듯한데, 눈이 네 개입니다.

눈이 넷 달린 가면을 쓴 광대 행렬인데, 이들은 관을 묻는 과정에서 무덤 사방을 지켜 서는 역할을 합니다. 귀신이 꼬여 행여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종의 호위무사인 겁니다.

본 상여가 나오기 한참 전인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지고 가는 조금은 작은 상여도 보입니다. 명성황후의 시신을 모신 본 상여는 4대문을 통과하기 힘들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이 작은 상여는 4대문처럼 통과하기 힘든 장애물을 만났을 때, 관을 임시로 모시기 위한 예비용 상여인 것입니다.

얼굴에 뭔가를 두른 채 말을 타고 가는 행렬도 보입니다. 곡 소리를 전담하는 궁녀입니다. 장례 행렬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줄곧 명성황후의 죽음을 애도하는 곡소리를 냈습니다.

황후의 본상여 양편으로는 호위군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이전의 국장의궤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흥미롭습니다. 바로 신식군대라는 점입니다. 제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정조대왕이 축성한 수원화성축성의궤의 내용도 놀랍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사람이 5천 명이나 됐다고 하는데요, 이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예컨데 서울 사는 정시웅이란 인부는 어떤 일을 했고 모두 몇일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특히 일한 시간을 하루 단위가 아닌 반나절 단위로 기록할 정도로 세세하게 적었습니다.

이쯤되면 왜 의궤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왕실의 각종 행사를 기록한 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의궤의 중요성을 꼼꼼히 설명해주시던 한영우 이화여대 교수는 "프랑스가 베르사이유 궁전의 기록 역사를 이처럼 자세하게 남겨놨습니까? 중국이 자금성 건설에 참여한 인부 이름을 남겨놨습니까?"하며 반문하더군요.

한 교수는 의궤는 "조선시대 정치의 책임성, 투명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수원화성축성의궤를 예로 들어 "양반사회라고 해서 차별사회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자료를 보면 상당히 평등사회였던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국보급 유물, 어서 빨리 자세히 살펴볼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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