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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경 조종사도 서류 위조…엉터리 심사

[취재파일] 해경 조종사도 서류 위조…엉터리 심사

비행기 조종사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비행기 조종실에 설치된 수많은 기계들을 작동할 줄 아는 기술은 기본이고, 모든 기상상황에 따라 순발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침착하게 대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함께 탑승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도 필요합니다. 여러가지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아마 모두들 상식적으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검찰이 최근 해양경찰 소속 고정익 비행기 조종사들을 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무더기로 구속기소했습니다. 고정익 비행기, 초계기로도 잘 알려진 이 비행기는 21인승으로, 해상 초계나 수색, 구조작업에 쓰입니다. 매일 하루에 수시간씩 해상을 돌며 우리 수역 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어선은 없는지 감시하는 게 주된 역할입니다. 이런 공무를 맡은 조종사들이 왜 검찰에 적발된걸까요?

이번에 적발된 현직 조종사들은 8명입니다. 2007년부터 합격한 조종사가 12명인데 무려 3분의 2가 부정합격한 셈입니다. 해경의 초계기 조종사 채용 시험을 살펴봤습니다. 서류심사와 실기심사를 거쳐 면접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초계기 조종사들은 경위와 경감으로 바로 채용되는데, 이때 1천 시간, 1천 7백시간 이상의 비행경력이 있으면 서류 심사를 큰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행시간을 채우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고정익 비행기가 그리 많지도 않고, 한번 비행할 때마다 돈이 많이 드는데다 1천 시간 넘게 투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결국 민간 항공사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뒤 이 비행 시간을 '돈'으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민간 항공사 직원들에게 비행시간을 부풀려 달라고 하거나 이미 없어진 외국 비행학교의 직인을 위조해 비행경력 증명서를 만들어 냅니다. 현직 조종사에게 최대 8천만원까지 뒷돈을 주고 인사청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2008년 특채에서는 한 조종사가 본인이 실제 비행한 3백여 시간 외에 있지도 않는 기종으로 1천 4백시간 비행했다고 허위로 기록해 경감에 채용됐고, 다른 조종사는 이미 없어져버린 호주 비행학교의 비행경력증명서를 위조해 경위에 채용됐습니다. 

연습했다던 비행기 기종만 확인했더라면, 호주 비행학교에 다녀온 지원자의 출입국 기록만 확인했더라면 서류 심사에서부터 떨어졌을 사람들이 경찰의 임무를 띄고 우리 해상을 지켜왔던 겁니다. 심사 과정이 너무나 허술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해경 초계기 조종사는 한번에 4,5시간 비행, 2교대로 근무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다, 월급도 적습니다. 하지만 매년 2명 남짓 뽑는 이 특채의 경쟁률은 3대1이 넘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채용된 조종사도 20여명에 불과합니다. 조종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채용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이 경력을 발판 삼아 더 나은 항공사에 취업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경위, 경감으로 특별채용된 뒤 다른 항공사로 이직하면 몸값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렇게 채용된 사람들은 다행히 지금까지 사고를 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비행기 조종 기술 만큼은 인정할만 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왠지 믿음이 가질 않네요. 바다에서 사고가 났을 때 해경의 비행기가 앞에 나타난다면 조종사의 자질부터 의심하게 될 것 같습니다. 비행기 조종은 제대로 하는 건지, 위급 상황에 잘 대처할 수는 있는 건지, 이제 막 구조됐다고 안도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안전한 곳까지 옮겨줄 수 있는 건지...

목숨걸고 민간인들을 구조하는 다른 많은 해경 조종사들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긴 쉽지 않겠죠. 이번 일로 전,현직 조종사 7명이 구속됐고 1명은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싣고 더 많은 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여객기 조종사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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