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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경제동물'들에게 고함(2) 위기를 바로 봐야...

-루비니는 왜 ‘최악의 시기’에 닥친 ‘최악의 위기’를 말했나?

[취재파일] '경제동물'들에게 고함(2) 위기를 바로 봐야...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하겠기에 일본 금융 당국은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사실 일본 정부는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이미 GDP의 200%에 달하는 재정적자에다 대지진 여파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과 조달금리 상승 우려, 그리고 노령화와 장기 침체에 따른 저축률 하락 등 돈 나올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가칭 ‘복구세’ 같은 세목을 신설해 국민들 호주머니를 털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저축률이 하락하고 노령화된 사회구조상 얼마나 걷힐지도 의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막다른 골목의 절박한 선택이 세계 경제의 민감한 뇌관에 불을 당길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돈 나올 곳 없는 일본에게는 아직 열지 않은 금고 열쇠가 하나 있습니다. 9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가 있죠.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대미 채권국가인 일본이 자기 목에 칼이 들어 온 상황에서 언제까지 미국 사정을 봐 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더구나 미증유의 대지진과 지진 해일 충격, 방사능 공포까지 뒤얽혀 뒷수습에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국제 금융시장에 미 채권을 매각하는 건 시간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만 자금을 마련하고 끝이 나면 좋은 데 그게 아니란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일본이 일단 미국 채권을 국제 시장에 매각하기 시작하면 금융시장엔 일대 ‘쓰나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세계 2위 대미 채권국인 일본이 미 국채를 팔기 시작하면 미 채권 값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죠. 이렇게 되면 중국과 타이완, 한국 등 다른 달러표시 채권 보유국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서 천문학적 손실을 입게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른 추가손실 회피를 위해 중국과 타이완 등 채권국들이 앞다퉈 미 국채 매각에 나서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겨죠.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에 이미 금융위기 수습에 천문학적 달러 찍어내기를 반복한 상황이죠. 채권 상환을 위해 일시적으로 달러화 수요가 몰리면 다시 달러화를 찍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달러화 값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달러 발행은 달러화가 거의 ‘휴지조각’ 수준으로 폭락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 비관적 분석으로 '닥터 둠'이라고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나, 세계적인 투자분석가인 마크 파버 등은 이미 달러화 가치의 장기하락에 따른 기축통화 지위 상실을 예상한 바 있지만, 이 와중에 발생한 일본 대지진은 불타는 숲에 ‘강풍’과 ‘기름’을 동시에 퍼붓는 충격파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세계 경제는 기축통화 기능을 하는 달러와 엔, 그리고 연쇄 재정적자로 흔들리는 유로라는 3대 통화가 모두 휘청거리는 엄청난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화폐가 흔들리면 원유, 곡물, 지하자원 등 가뜩이나 폭등을 거듭하고 있는 현물자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각국의 국민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비니 교수도 이번 일본 참사를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위기가 벌어졌다고 평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화폐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전시경제나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처럼 수백, 수천 퍼센트의 인플레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극단적 전망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실제로 현실화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난 금융위기의 역사를 봐도 이제는 ‘위기’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던 인간의 오만이 정점에 달하던 때, 가장 번영했던 시기의 정점에서도 ‘위기의 법칙’은 늘 작동하고 있었고, 작은 파도를 계기로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물며 지진 해일과 방사능 유출 공포로 수십, 수백만의 생명을 담보로 잡은 일본발 위기를 보며 ‘수혜주’니 ‘반사이익’ 따위를 거론하는 ‘경제동물’같은 시각으론 어떤 위기도 돌파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것이 ‘리더의 눈’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겠죠. 방사능 공포 속에 원전 자체의 불확실성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전 기공식에 참석해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고 웃음짓는 ‘리더’의 모습에서 세계 경제를 뒤흔들 위기의 ‘쓰나미’를 인식하지 못한 채 ‘반사이익’에 눈이 먼 ‘경제동물’의 단견과 천박함이 읽히는 건 저 혼자의 과민함일까요?

☞[취재파일] '경제동물'들에게 고함(1) '반사이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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