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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민자 기숙사, 좀 심하지 않나요?

[취재파일] 민자 기숙사, 좀 심하지 않나요?
15년쯤 전 대학 다닐 때 제가 살던 기숙사는 학기당 45만 원 정도였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이 약간 넘는 돈에 전기나 수도 요금도 따로 내지 않았습니다. 당시 학교 식당에선 몇 백 원이면 가장 저렴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한 달 생활비가 20만 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학교에 가까운 신림동에서 하숙방을 잡으면 하루 두 끼 포함해 37만 원 안팎. 기숙사에서 지낼 때보다 생활비가 두 배는 껑충 뛰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학 기숙사가 저 같은 지방학생에겐 고향집 다음으로 따뜻한 보금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민자기숙사' 취재를 하다보니 정말 많이 변했더군요. 민자기숙사란 대학 예산을 들이지 않고 외부 자본으로 지은 학사를 뜻합니다. 서강대를 예로 들면, 외부 기업이 무료로 곤자가기숙사를 건립해주고, 대신 20년간 학사 운영권을 이 기업이 갖는 방식입니다. 대신 20년 동안 학생들이 내는 기숙사비를 이 기업에서 가져가고, 20년이 지나면 기숙사는 서강대에 기증됩니다.

         




대학은 돈 한 푼 안들이고 교내에 새 건물을 지어서 좋고, 외부 기업은 시장 불황에 적어도 20년간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도 무료로 건물을 지어주니 투자를 하는 기업에 위험부담이 있지는 않을까요? 이 기업이 얼마나 수익을 얻는지 추산해보겠습니다.

곤자가기숙사의 경우 한 학생의 한달 평균 기숙사비를 48만 원이니 2인 1실임을 감안하면 여섯 평짜리 방 하나에 96만 원 정도 됩니다. 곤자가기숙사에는 총 447개의 방이 있는데, 장애인용 독실 2방을 제외하면 445실 모두 2인 1실입니다. 요샌 바깥도 전세대란이니 뭐니 해서 기숙사 경쟁률이 2대1을 넘어서니까 방이 빌 일도 없겠죠. 그럼 1년에 기숙사비로 걷히는 돈은 적어도 총 51억2천640만 원(445실×96만원×12개월) 정도 됩니다.

기숙사 자체와 붙어 있는 쇼핑프라자까지 합쳐 건설비용은 368억 원. 7년 정도면 기업 측에서 건설비용을 상쇄할 만큼 기숙사비를 가져간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관리운영비를 뺀 순수익으로 나눠야 정확한 계산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기숙사(사업)가 초기비용이 크고 이후 관리운영비 비중이 적다는 특성, 쇼핑프라자에 입점한 상업시설에서 나오는 수입은 배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적어도 투자를 하는 기업이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업 관계자는 건설비를 뽑고 최소 적정수익을 보장받는 점유율(입실률)을 75%로 보고 있는데, 방학까지 쳐서 점유율이 90%를 훨씬 웃돈다고 얘기했습니다.

문제는 학생들입니다. 사실 외부 기업으로서는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건설비용을 환수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니까 기숙사비를 최대한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무한정 올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숙사비가 너무 높으면 점유율이 낮아져 총 매출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대학과 외부 기업이 손을 잡고 학생들의 고혈을 짜내 윈윈하는 구조인 겁니다.

물론 대학은 전세난으로 높아진 외부 숙박시설 비용과 비교하면 절대 비싼 게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싼 것도 아니죠. 대학이 외부 상업시설과 똑같이 학생을 상대로 이윤을 남긴다는 게 과연 옳은 거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현재 민자기숙사를 건립했거나 건립하고 있다고 발표한 서울 내 대학교는 모두 9개. 연세대와 고려대 등 소위 잘나가는 사립대도 포함됩니다. 기존의 저렴한 기숙사가 아직 함께 운영되고 있는 곳도 점진적으로 민자기숙사를 늘려 나갈 방침입니다. 지난해 민자기숙사 부실공사 논란을 겪은 숭실대 경우도, 기존 기숙사는 고시원처럼 운영하고, 신입생들에게는 민자기숙사만 개방했습니다.

적어도 대학만큼은 돈이 없는 학생도 공평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교육운영비가 부족하다면 외부에서 구할 일이지, 절대 학생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생활고에 시달린 학생들이 해선 안 되는 돈벌이에 나서고, 죽음을 선택하는 사태에 대해 대학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직접 그러라고 한 게 아니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강요한다면 그 또한 책임이 있습니다.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영혼이 있는 대학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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