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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의 날에는 대통령을 생각한다...

링컨에 대한 5가지 오해

[취재파일] 대통령의 날에는 대통령을 생각한다...
미국의 오늘(2월 21일)은 공휴일입니다. President's day,우리 말로 하면 '대통령의 날' 정도 되겠네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이 2월 20일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맞춰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로 지정했다고 합니다.

조지 워싱턴이 어린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죠. 생일에 아버지가 도끼를 선물로 주셨는데, 도끼가 얼마나 잘 드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에 도끼질을 했다는... 화가 난 아버지가 누가 했느냐고 길길이 뛰는데, 그 무서운 상황에서도 꼬마 조지 워싱턴이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는 거죠. 그래서 조지 워싱턴은 정직의 상징이 됐다는 뭐 그런 일화입니다. "I can't tell a lie"로 표현되는 이 일화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습니다. 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워싱턴이 아닌 링컨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맨 위에 보이는 사진처럼 5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 링컨 대통령 말입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대통령의 날을 맞아 '링컨에 관한 5가지 오해'라는 기사를 실었더군요. 개인적으로 링컨을 좋아하는 데다, 미국 서점의 대통령 코너에 가면 존 F 케네디와 함께 항상 잘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기있는 대통령에 관한 얘기여서 저 또한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기사내용은 이렇습니다.

1.링컨은 시골뜨기 변호사였다?

- 헨리 폰다가 '젊은 링컨'에서 링컨을 시골의 순박한 변호사로 표현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미국인들이 링컨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더 파고 들어가면 링컨과 동업했던 윌리엄 헌돈이라는 친구가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링컨에 대해 험담을 한 것이 이런 오해를 낳았다고 하는군요. 즉, "링컨이 사전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배심원이나 판사와 농담이나 따먹는 뭐 그런..."하는 식으로 유언비어를 만들었다는 거죠.

그런데 알고 보면 링컨은 185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미시시피강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만드는 회사를 대표하는 아주 이름있는 변호사였다고 합니다. 1854년 노예제를 지지하는 칸사스-네브라스카 법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꽤 이름 날리는 변호사가 됐을 거라고 합니다.

2. 링컨은 게이였다?

- 저는 처음 들은 얘기인데요, 래리 크래머라는 게이 인권 운동가는 링컨이 한때 룸메이트였던 조슈아 스피드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근거로 1999년 "링컨은 게이였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역사학자 Gabor Boritt는 그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2005년에 C.A. Tripp이라는 교수가(킨제이 보고서로 유명한 킨제이의 동료라고 합니다) <링컨의 은밀한 세계>라는 책에서 "링컨은 19세기 당시의 관습에 따르기 위해 결혼한 것 뿐이지 실제로는 젊은 남자들을 꼬시고 같이 잠자는 일을 계속했다."고  쓰는 바람에 이 오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 오해를 풀어준 사람도 링컨의 동료변호사였던 헌돈입니다. 그는 "링컨은 여자를 유혹하는 매력이 있었고, 33살에 결혼하기 전에는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찾았습니다." 물론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곧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링컨이 이뤄낸 역사적 유산을 생각할 때 그의 성적 기호 이런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3. 링컨은 우울증이 있었다?

- 워싱턴대학의 조슈아 울프 쉥크라는 사람이 최근 펴낸 책에서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 치료를 받을 정도의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썼습니다. 링컨 스스로도 첫사랑이었던 여인이 1835년에 죽었을 때, 부인이 된 메어리 토드와 결혼 전날 파혼했을 때 (다행히 둘은 1년 뒤에 화해해서 결혼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굉장히 괴로웠다고  토로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우울증은 병원에서 다루지 않은 질병이었고, 우울증이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자살로 이끄는 것을 감안할 때 대통령으로서 쉬지 않고, 그러면서 대단히 효율적으로 일했던 링컨이 우울증을 앓았을 리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1862년 백악관에서 아들 윌리가 열병으로 숨졌을 때, 60만 명의 젊은이들이 남북전쟁의 희생양이 됐을 때 몹시 슬퍼하기는 했지만, 링컨의 성정은 대단히 유쾌했었다고 합니다.

4. 링컨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 링컨에 관한 많은 저술들을 보면 링컨은 대단히 자주 사람들을 용서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탈영병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승인하고, 미국 역사에서 가장 대규모였던 인디언 38명에 대한 교수형을 지시했던 사람이 링컨입니다.

미 연방을 지켜내기 위해 전쟁을, 무기를 발전시켰고, 자신의 소신 때문에 수많은 희생을 감수했던 정치인이기도 했죠. 다만 링컨이 죽기 직전에 한 탈영병을 사면해주는 데 신경을 썼다는 것 때문에 이런 오해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죠.

5. 링컨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다?

- 링컨이 죽은 지 15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일부 의사들은 링컨에 대한 진단을 멈추지 않고 이습니다. 어떤 이들은 링컨이 심혈관 쪽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어떤 이들은 치명적인 암을 앓고 있어서 1865년 4월 14일에 암살되지 않았더라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다른 대통령들처럼 링컨도 재임기간 초췌해 보였고, 몸무게도 빠졌지만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맬 때 그를 치료한 의사들은 링컨의 잘 발달된 팔과 가슴 근육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병약한 사람이었다면 총탄을 맞으면 바로 숨졌겠지만, 링컨은 무려 9시간 동안 죽음과 사투를 벌인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 초대 조지 워싱턴부터 44대 오바마 대통령까지 미국의 대통령제는 2백 년 넘게 유지돼 오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나라의 대통령제의 나이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불과 63살입니다.대통령제의 역사 자체가 미국과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일천한 셈입니다.

거기다  현직인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도 역대 대통령이 10명 밖에 안 되고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아직 살아있는 분들도 많고 다른 분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뭐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일화가 소개되는 대통령도 없습니다.

물론 국민 각자가 마음속에 담고 존경하는 대통령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임기후 혹은 세상을 떠난 후라도 정파적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그래서 그의 일생이, 그가 겪은 일화가, 그의 철학이 국민에게 잘 알려지는 대통령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성공한,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대한민국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자격은 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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