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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으로 흥한 미국,총 때문에 망한다?

작동하지 않는 미국의 총기 대책

총으로 흥한 미국,총 때문에 망한다?

2011년 1월 8일 토요일 오전.

평화롭던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시의 세이프웨이 앞에서 스무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이 곳에서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던 민주당의 기포즈 연방 하원의원(40살)을 시작으로 근처에 있던 미국인들이 아무 이유없이 저격당했습니다. 6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습니다.

2001년 9.11테러 당일에 태어나 50개 미국 각 주에서 선정된 50명의 '미국의 희망' 중 한 명이었던 그린 양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린 양은 보스턴 지역의 한 어린이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나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을 감동시켰습니다.




첫 저격 대상이었던 기포즈 의원은 불굴의 의지로 위독한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호흡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다가오면 미소를 짓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상태는 이 불행한 사건을 하루 빨리 잊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에게 시시각각 전달되고 있습니다.

예상됐던 수순이지만 이번 총기 난사 이후 미국 언론들은 총기 대책에 관한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이번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 러프너가 불안정한 정신사태에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총기를 소유하게 된 경위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러다 말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수정헌법 2조에 총기 소지권리는 침해받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다('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총기 소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총기를 잘못 휘두른 사람이 문제'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번 뿐 아니라 총기 난사로 인한 비극이 그동안 숱하게 일어났었지만, 대부분의 대책은 시늉에 그쳐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기억을 상기하는 차원에서 그동안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대표적인 총기 사건을 정리해 봅니다. 묘한 공통점은 이 사건들의 범인들이 대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결론났다는 겁니다.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 주 댈러스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던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리 하비 오스월드가 쏜 총탄에 맞아 숨졌습니다.




1968년 4월 4일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테네시주 멤피스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 서 있다가 저격수가 쏜 총탄에 맞고 숨졌습니다.





▲ 케네디가 3형제. 맨 왼쪽이 존, 가운데가 로버트, 오른쪽이 에드워드.이젠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1968년 6월 5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F. 케네디가 암살됩니다. 경찰은 용의자였던 정신적 문제가 있던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립니다.




1980년 12월 18일 전설적인 그룹 비틀스의 멤버 존 레논이 미국 뉴욕에서 과격 팬이던 마크 채프먼의 총에 암살당합니다.



1981년 3월 30일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정신병자 힝클리(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범행동기를 밝혀서...)에 의해 저격당했지만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습니다. 왼쪽 심장 밑에 1발이 명중됐는데, 수술 후 완쾌됐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16일 32명을 숨지게 하고 29명을 다치게 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살인사건으로 기록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역시 정신적 문제가 있던 재미한국인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은 자유의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책도 총기 소지 자체를 규제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을 규제하는 쪽에 촛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들은 그 누구도 정신적 문제를 이유로 총기를 소지하는데 제한을 받았던 적이 없다는 게 미국 총기 대책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지니아주 총기 대책에 관한 규정을 봤더니 취재비자(I 비자)로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저도 총기를 구입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걸로 나오더군요. 물론 저는 정신적 문제가 없으니까 그런 기록이 있을 리도 없고요... 문제는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총기 소지를 규제할 결정권을 갖고 있는 법원이 그 사실을 알 때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거죠.

이런 미국의 현실에 대해 오늘 워싱턴 포스트는 인상적인 사설을 실었습니다. 미국에게  투산을 선물해준 미국의 시스템이라는 제목이었는데요,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미국의 정신건강 치료 체계는 40년 넘는 세월 동안 구축돼 왔다. 자신이나 남에게 위험한 인물로 폭력을 유발할 수 있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정의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 하지만 러프너가 이번 총기 난사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그가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신고가 분명히 서너차례 있었다. 애리조나주의 관련 시스템은 더욱 정교하게 돼있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의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런 얘기다. 일부 사람들이 위험을 목격했고, 행동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시스템은 이 러프너의 이상하고 기묘하고 파괴적인 행동들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위험하다는 기준은 미리 체크되는 게 아니라 경찰이 인식해야만 작동하는 게 현실이다. 정신적 문제가 없어야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총기 소지 규정도 러프너가 총을 구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경찰, 법원,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의사들---즉 미국의 시스템이 개인의 자유와 공중의 안전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러프너는 이제서야 비로서 그가 다른 이들에게 위험한지 여부를 판단받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겠는가...."

결국 현재의 시스템으로 이런 총기 난사 사건을 막을 수 없다는 자조 섞인 지적입니다.

이번 사건 이후 만난 미국인들 대부분이 개척과 서부시대 총으로 건설한 미국이 언젠가는 총 때문에 박살날 것이라는 불안감들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 워싱턴 일대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벨트웨이(혹은 D.C.) 스나이퍼 <워싱턴DC 일대를 둘러싸고 일어난 무차별 원거리 연쇄 저격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40대의 아버지와 10대의 의붓아들이 차를 타고 다니면서 무차별 저격을 했던 사건입니다.

피해자 중에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피격당한 이들이 많아서 당시에는 어떻게 하든 주유소를 가지 않았고,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가만히 서있지 않고 몸을 이리 저리 움직였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공포와 불안감이 그만큼 확산됐던 거죠. 결국 범인들은 잡혔고 40대 아버지는 2년 전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만, 미국에서의 총기 대책이란 사후 약방문에 그치고 있다는 불만들을 토로했습니다.

총기 난사 사건은 20세기 들어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도 누리지 못했던 부와 자유를 만끽했던 미국인들이 최강대국에서 살아가면서 감수해야 할 불이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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