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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치마폭에 국새 감췄지만…치욕의 한일병합

<8뉴스>

<앵커>

오늘(22일)부터 꼭 100년 전이죠. 조선통감 데라우치의 관저에서 이완용은 치욕적인 한일강제병합 문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SBS 연중기획 일류국가 시리즈, 이번 달에는 '경술국치 100년'을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오늘 첫 순서에서는 잊을 수 없는 치욕의 그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김용태 기자입니다.

<기자>

1910년 8월 22일 오후 1시 창덕궁 흥복헌.

'복을 부른다'는 이 전각에서 500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립니다.

총리대신 이완용은 한일 병합조약 체결을 위한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순종 황제는 망설였고, 황후는 국새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저항했습니다.

[윤숙/창덕궁 해설팀장 : 병풍 뒤에서 그 회의 내용을 듣고 있다가 그게 정말 아니다, 너무 아니다 싶어가지고 국새를 치마폭에 감춰가지고 주지 않으려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저항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황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순종에게 전권 위임장을 받아낸 이완용은 일본 데라우치 통감의 관저로 향하게 됩니다.

병합조약 체결이 이뤄진 시간은 오후 4시.

일본측이 미리 준비한 2개의 문서에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한일 양국의 문서는 내용과 형식은 물론, 글자체, 겉표지까지 똑같습니다.

[최덕규/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순종과 고종은 틀림없이 병합조약에 서명하지 않을것을 알고 있었던 요는, 나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꾸민 걸로 보입니다.]

일사천리로 조약이 체결된 조선통감 관저 내부는 10년뒤 신문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병합조약 체결후 백년이 지난 지금 통감관저 터는 남산 공원으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치욕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이나 표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상취재 : 임우식, 신동환, 영상편집 : 조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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