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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1호 사태' 예견된 갈등…축협 회장이 답할 시간

손흥민 선수의 개인 트레이너가 인스타그램에 '축구협회 저격 글'을 올리면서 비롯된 이른바 '2701호 사태', 그 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고, 반복되는 갈등입니다. 사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면 다음 대회에도 또 다른 '2701호 사태'를 피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 짚어보겠습니다.

현대 축구에선 물리 치료와 훈련이 긴밀하게 연계되면서 재활 트레이너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감독이 아무리 훌륭한 전술을 짜도, 선수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건강과 직결된 일이다 보니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주치의와 재활 트레이너, 피지컬 트레이너 영역이 각각 전문성을 띠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보니 관점에 따라 의견 충돌이 잦습니다. 유럽의 주요 명문 팀들이 의학과 물리치료 영역은 물론, 생리학, 영양학, 운동 역학, 약학, 심리학, 데이터분석 전문가를 스포츠 사이언스팀에 한데 묶어 '팀워크'를 발휘하도록 하는 배경입니다.

'신뢰', '라포 형성'은 필수입니다. 한 명의 선수를 공유하는 소속팀과 대표팀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2009년, 무릎 부상 중인 박지성 선수의 대표팀 차출에 난색을 보이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대표팀 훈련 기간 이례적으로 피지컬 트레이너를 직접 파견했습니다. 축구협회 의무팀에선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죠. 이번 대회 직전 눈 주위 뼈가 부러지며 크게 다친 손흥민 선수의 경우도 협회와 토트넘은 긴밀히 협의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정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마찰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간 수천억 원, 많게는 조 단위 예산을 집행하는 유럽 클럽에선 스포츠 사이언스 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해 발전을 거듭하는 반면, 1천억 원 남짓한 예산 규모에 수년째 머물러 있는 축구협회에선 관련 투자 역시 정체돼 있습니다.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불신의 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요 대회마다 잡음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직전엔 황열병 주사에 대한 주치의의 뒤늦은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고, 2019년 아시안컵 기간엔 주치의 선정 방식과 의무 트레이너의 처우 문제가 잇따라 터졌습니다.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협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출범한 게 '축구과학팀'이었습니다. 전력강화실 산하에 관련 팀을 편성한 뒤 직무의 전문성, 선정의 공정성, 처우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이렇게 야심 차게 출범한 축구과학팀이 제구실을 했다면 2701호 사태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일은 앞서 설명한 구조적 문제가 얽히고설켜 발생한 '종합 세트'입니다. 이미 일부 선수들은 채용 때부터 공정성 시비가 일었던 의무팀장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팀장은 20년 넘는 경력의 '베테랑'으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분이지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선수 생명, 인생을 걸고 나서는 대회에 자신의 몸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려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2701호'입니다. 협회의 공식적인 지원은 없었고, 억대의 부대 비용을 선수들은 갹출했습니다. 그리고 주치의를 비롯한 협회 의무팀과 '2701호'는 반목했습니다. 협회는 중재하지 못하고 '원칙' 뒤에 숨어 방관했습니다.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 원정 16강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공식 치료실과 비공식 치료실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적어도 선수 치료에 있어서는 모두가 한 마음이었습니다.

반복되는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정몽규 회장에게 있습니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정 회장 주도로 조직 개편을 단행한 뒤 행정력이 뒷걸음쳤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FA컵, 23세 대표팀, A대표팀, 곳곳에서 일일이 열거하기 민망한 행정 실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축구과학팀도 이 무렵 조직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스포츠 과학이 발전할수록 선수 관리 체계는 전문, 세분화 되고, 선수들의 요구 수준은 높아질 겁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갈등을 통합해야 하는 책임, 미래 지향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할 책임은 정몽규 회장에게 있습니다.

개인 트레이너의 자격증 문제가 불거졌는데요, 이게 갈등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격증'이 없어 '무자격자'라고 판단했다면 토트넘에서도, 또 벤투 감독도 해당 트레이너에게 선수를 맡기진 않았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대회 기간 선수들의 몸 관리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면밀하게 검토하고, 발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기획 : 정성진 / 영상취재 : 홍종수 / 편집 : 이혜림 / 디자인 : 채지우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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